현인 | 玄仁 | Hyun In - 독특한 창법의 트로트 거성
본명
현동주
창씨명
고토 진(後藤 仁)
아호
구암(舊岩)
본관
연주 현씨
출생
1919년 12월 14일
경상남도 부산부 사중면 영선리
(현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1가 183번지)
사망
2002년 4월 13일 (향년 82세)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학력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졸업)
우에노음악학교 (성악과 / 졸업)
부모
아버지 현명근, 어머니 오봉식(吳鳳植)
형제자매
남동생 현필주(玄弼柱), 여동생 현애숙(玄愛淑)
배우자
첫째 부인 조창길
둘째 부인 박정혜(朴貞惠)
셋째 부인 김미정
자녀
아들 현재헌, 장녀 현혜정(玄惠靜)
차녀 현수정(玄水靜), 3녀 현희봉(玄喜鳳), 4녀 현지원(玄智媛)
종교
개신교(장로회)
데뷔
1940년 '신태양 극단'
대한민국 최초의 대중가수. 해방과 더불어 가요계에 선풍을 일으킨 대한민국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가수다.
본명은 현동주(玄東柱)이다. 당시의 대중 가수들 중 가장 학력이 높은데 도쿄 우에노음악학교(現 도쿄예술대학) 성악과 출신이다. 특유의 떠는 창법으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정말 획기적인 창법이었다.
소설가이자 독립유공자인 현진건은 그의 5촌 당숙(堂叔)이며, 독립유공자 현정건은 그의 7촌 재종숙(再從叔)이다.
1919년 12월 14일 경상남도 부산부 사중면 영선리(현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1가) 183번지의 유복한 집안에서 스탠다드 석유회사 부산 사무소 직원이던 아버지 현명근과 신교육을 받은 어머니 해주 오씨 오봉식(吳鳳植) 사이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8년 경성제2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에는 현 도쿄예술대학의 전신인 우에노 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했다. 원래 그의 아버지는 현인이 사관학교에 가기를 원했지만, 현인 본인은 음대에 진학하여 교수가 되기를 희망했다. 이에 화가 난 아버지는 그의 대학 학비를 끊어버렸다고 한다. 일제의 강제 징용이 시작되자 중국 상하이로 피신하여 그 곳에서 악단 '신태양'을 조직해서 활동한다. 해방 이후, 귀국하여 악단을 다시 조직하여 극장 무대에서 연주하며 다닌다. 그 후 당시의 유명한 작곡가인 박시춘이 찾아와서 자신의 곡을 불러달라고 한다.
현인은 "성악도가 유행가 따위를 부를 수는 없다"며 거절했지만, 박시춘이 거듭 권유하자 며칠 생각해본다고 하고, 집에서 며칠 동안 고민을 한 뒤, 결국 대중가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박시춘은 현인에게 곡을 주었고, 이 곡이 바로 신라의 달밤이다. 이 곡은 발표 당시에 정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현인을 가요계의 정상에 등극하게 했다. 이후 현인은 <비 나리는 고모령>, <고향만리> 등을 연달아 히트시킨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슬픈 정서를 잘 보여주는 <굳세어라 금순아>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들으며 울기도 했다. 시대를 대변하는 듯한 가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후 대한가수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1974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민을 가서 '가스라이트'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했지만, 한국에서의 무대가 그리워서 1981년에 귀국한다. 1991년에는 <노래하는 나그네>, <길> 등의 신곡들을 발표한다. 1999년까지는 KBS 가요무대와 악극 등에 출연하여 왕성한 활동을 했었지만, 지병인 당뇨병의 악화로 2002년 4월 13일, 82세로 사망하였다.
1947년 신라의 달밤
1949년 고향 만 리
1949년 럭키 서울
1949년 베사메 무초 - 멕시코의 작곡가 콘수엘로 벨라스케스(Consuelo Velázquez)의 동명의 노래를 번안하였다.
1949년 비 내리는 고모령 - 고모역 문서에 이 노래의 유래가 소개되어 있다.
1949년 푸른 언덕
1950년 서울야곡 - 현인이 직접 작사와 작곡을 한 노래로 알려졌으나, 뒤늦게 유호가 작사한것으로 알려졌다. 가수 전영이 리메이크한 바 있다.
1950년 전우야 잘 자라
1950년 애정산맥
1952년 인도의 향불
1953년 굳세어라 금순아 - 눈보라가 휘날리는~으로 시작하는 노래. 부산 영도대교 도개가 시작될 때 흘러나온다. 곡의 내용은 흥남 철수와 관련이 있다.
1956년 꿈속의 사랑 -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상하이에서 활동하였던 중국 여가수 공추하(龔秋霞)의 몽중인(夢中人) 이라는 노래를 번안하였다.
1956년 나폴리 맘보
1956년 고엽 - 외국곡에서 현인이 직접 가사를 써서 발표한 번안곡이다.
1957년 불국사의 밤
1959년 꿈이여 다시 한 번
1959년 세월이 가면 - 나애심의 노래를 리메이크하였다. 참고로 현인의 노래중 "세월은 가고"라는 노래가 있는데, 1960년대 발매된 '현인 가요힛트앨범 제3집'에서는 "세월이 가면"과 동일한 노래이나, 1973년 발매된 '현인 불멸의 힛송앨범'에서는 이 노래와 다른 노래로 수록되어 있다.
1959년 즐거운 여름
1963년 체리 핑크 맘보
1979년 노래하는 나그네? - 1979년 현인 회갑 기념으로 KBS "가요대행진"에서 방송된 '영원한 노래 현인특집'에서 현인 본인이 이 노래를 불렀었다. 참고로 음반은 1991년에 발표되었다. 다만 1990년 현인 데뷔 50년 기념으로 가요무대에서 방송된 '현인 나의노래 50년 특집'에서 현인 본인이 이 노래를 부르기 전, 환갑 때 하중희 작사 김강섭 작곡으로 노래를 만들어 주었다고 말한것으로 보아 1979년 발표된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1991년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