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7-22대 국회의원 - 조경태 | 趙慶泰 | Cho Kyoung-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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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7-22대 국회의원 - 조경태 | 趙慶泰 | Cho Kyoung-tae

출생
1968년 1월 10일 (56세)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신용리 마동마을
거주지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다대포 현대아파트
서울특별시 강서구 염창동 강변코아루아파트
본관
함안 조씨
현직
제22대 국회의원
대한민국-중화민국 의원친선협회 회장
국민의힘 격차해소특별위원장
국민의힘 사하구 을 당협위원장
사단법인 청년과미래 고문위원

대한민국의 공학자, 교육인, 국회의원 비서관 출신 정치인.

소속 정당은 국민의힘, 지역구는 사하구 을이다.

현재 22대 국회 현역 6선 최다선 의원이다.


1968년 1월 10일,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신용리 마동마을에서 아버지 조재제(趙在濟) 슬하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조재제씨는 아들들이 도시에서 교육을 받아야 큰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후 부산광역시 사하구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자갈치시장에서 지게를 지고 짐꾼으로 일하면서 아들들을 키웠다. 비록 집은 가난했지만 아버지는 돈이 있으면 더 가난한 집에 연탄을 사다주거나 동네 노인들에게 막걸리를 대접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신평초등학교, 사하중학교, 경남고등학교, 부산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처음에는 돈을 빨리 벌어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서 공과대학에 진학한 것이었는데 학부에 재학하면서 공부에 욕심이 생겨 부산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1990년 부산대학교 학부를 졸업한 뒤 부산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 석사 과정에 진학했다. 이후 휴학한 뒤 1990년 6월 11일 육군에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육군군수사령부 제1보급창에서 소총수로 복무하였고, 1991년 11월 19일 상병으로 소집해제되어 병역을 마쳤다.

대학원 복학 후에는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고 부산전문대학(현 부산과학기술대학교)과 부경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등 생계를 이어나가면서 1994년 토목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1999년 2월에는 토목공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이후 부산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했으나 중퇴했다.

그 시절 대학생들이 으레 운동권에 몸 담았듯이, 그도 한때 학생운동에 몸 담았지만, "학생운동이 나의 생각과 다르게 크게 변질됐다."고 생각하면서 결국 학생운동을 박차고 나왔다. 이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예산감시단 위원, 동아대학교 건설기술연구소 특별연구원, 신라대학교 낙동강환경연구소 객원연구원, 부산대학교 생산기술연구소 전임연구원 등으로도 활동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통일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선거사무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연을 맺었다. 이후 군복무 및 석사과정을 마친 다음, 만 28세이던 1996년 통합민주당 공천을 받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하구 갑에 출마하였다. 당시 신분은 박사과정생. 비록 신한국당 서석재 후보에 밀려 낙선했지만 15.5%를 얻는 파란을 일으켰다. 선거 전날 본인은 200표, 아내는 20표 득표를 예상했다고 한것에 비춰봐도 당시 상황이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당선권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낮은 득표율이었지만 당시 부산/경남권에서 절대적인 지지세를 가지고 있는 신한국당을 상대로 타 정당의 새파랗게 젊은 신인이 저 정도의 결과를 낸건 결코 보통 일이 아니었으며, 지금 기준으로는 선거 비용 전액 보전이 가능한 수치이다.

2024년 12월 4일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당시 국회 본회의에 참여한 여당 국민의힘 의원 18명 중 한 명으로 비상계엄해제요구결의안에 찬성하였다. 이후 12월 6일에는 국민의힘 의원들 중 처음으로 탄핵에 공개 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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