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申東燁|Shin Dong-yeob
출생
1971년 2월 17일 (53세)
충청북도 제천군 제천읍
출신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거주지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
국적
대한민국
본관
평산 신씨 (平山 申氏)
신체
176cm|68kg|270mm|A형
가족
아버지 신인철(1935년~2022년 5월 31일), 어머니 윤영옥(1938년-1995년)
큰 형 신동진, 누나 신미숙, 작은 형 신동훈
배우자 선혜윤(1978년생, 2006년 5월 27일 결혼 ~ 현재)
딸 신지효(2007년 4월 4일생)
아들 신규완(2010년 4월 8일생)
반려견 크림(2021년 12월생 믹스견)
학력
서울청운국민학교 (졸업)
청운중학교 (졸업)
경복고등학교 (64회 / 졸업)
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과 / 중퇴)
병역
대한민국 육군 상병 소집해제
종교
개신교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사
씨피엔터테인먼트
데뷔
1991년 SBS 특채 개그맨
(데뷔일로부터 +11978일, 32주년)
별명
동엽신, 섹드립의 신, 국민MC
MBTI
ESFP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방송인, MC, 유튜버.
1990년대부터 전성기를 누린 개그맨 겸 MC들 중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몇 안 되는 MC이다. 신동엽은 특히 1992년부터 2005년까지 기쁜 우리 토요일, 남자셋 여자셋, 신동엽의 신장개업, 신동엽의 러브하우스, TV 동물농장, 느낌표, 신동엽 김원희의 헤이헤이헤이, 해피 투게더. 신동엽과 김용만의 즐겨찾기 등에 출연, 전성기를 보내며 또래 개그맨들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커리어를 쌓아갔다. 또한 일찍이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 모두에서 활약을 시작한 MC로도 유명하다.
특히 메인 MC로서 순간적인 재치로 방송의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능력이 그 누구보다도 탁월하다. 타 출연자의 발언이 의도치 않게 분위기를 가라앉혀 자칫 방송의 흐름이 끊길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면 신동엽이 앞서 나온 발언과 연관된 재치있는 말이나 제스쳐로 큰 웃음을 이끌어내어 분위기를 반전시키면서 그 출연자가 무안하지 않음과 동시에 띄워줄 수 있는 방식으로 흐름을 살려나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저급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웃을 수 있고 방송의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드는 성인풍의 개그는 그만의 독보적인 영역으로 인식된다.
서울예전 연극과 1학년이던 1990년 연극배우로 커리어를 시작하여, 1991년 SBS 특채 개그맨으로 방송계에 데뷔했다.
1992년 1월 15일 코미디 전망대에 출연하여 코미디언으로 데뷔했으며 이후 별다른 무명 시절을 보내지 않고 1992년 8월 1일부터 <웃으면 좋아요>에서 방영한 '레일맨'이라는 코너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 "안녕하시렵니까"라는 유행어를 히트시키며 인기 코미디언이 되었다.전설의 레일맨 첫 화. 당시 신동엽은 MBC의 이휘재, KBS의 박수홍과 함께 SBS를 대표하는 미남 개그맨으로 유명했으며 실제로 대한민국 희극인 최초로 개인 코디네이터를 고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당시 월수입 60만 원일 때, 코디 월급이 80만 원이었다고 한다. (마녀사냥에서 신동엽이 직접 밝힌 내용.)
참고로 후술할 2020년대 현재 그의 넘버원 캐릭터는 섹드립의 제왕이지만, 데뷔 초창기 본인의 최고 소재는 '레일맨'이라는 코미디 프로그램 코너에서 보여준 유행어 "안녕하시렵니까?"와 두 눈 사이가 좁은 외모였다.
"안녕하시렵니까?"는 2020년 지금 세대에게는 특히 문장으로만 써 놓으면 확 와 닿지 않을 수 있는 유행어일 수 있는데, 실제 용례는 인터뷰어에게 "안녕하십니까?"가 아닌 "안녕하시렵니까?"라는 당대에 전혀 쓰임새가 없던 말로 인터뷰어를 한 번 당황시킨 뒤, 인터뷰어가 질문을 이어가면 "아 그래 난 황신혜 포기할 테니까 넌 김혜수 포기해..." 하는 식으로 엉뚱한 대답을 치고 들어와 질문자의 얼탱이를 빼놓는 상황 개그였다. 즉 일종의 만담개그. 다만 비슷한 시기의 덩달이와 썰렁이가 전형적인 일본식 보케-츳코미 구성이라면 신동엽은 자신이 보케도 되고 츳코미도 되는 특이한 타입의 올라운더 코미디언이었다. 굳이 일본의 코미디언과 비교하자면 아카시야 산마와 비슷한 타입이다.
한편 좁은 미간의 경우는 2010년대에 와서도 자신이 앞트임을 하면 눈이 하나가 된다는 등 개그 소재로 쭉 쓰고 있다. 아예 얼굴에서 눈코입이 한가운데 모두 모여있다고 자기소개하는 편이다.
SBS 시절에는 이영자와 콤비를 이룬 기쁜 우리 토요일과 홍록기와 콤비를 이룬 열려라 웃음천국에서 대활약하면서 오래 지나지 않아 서세원, 심형래, 김형곤, 주병진 등으로 대표되던 코미디계의 중견지향적 트렌드를 젊은 코미디언 위주로 싹 바꿔 버린 주인공이었다. 비록, 당시 분위기상 슬슬 코미디언의 세대 교체가 일어날 시점이라고는 하나 데뷔한 지 2~3년 밖에 안 된 풋내기였던 신동엽이 타 방송사들의 경력 많은 고참 코미디언들과 동등한 인기를 누리며 한 방송사(SBS)를 대표하는 메인 코미디언으로 활약했다는 것은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다. 만약에 SBS 연예대상이 90년대에 있었더라면 대상은 당연히 받았을 것이다. 매우 아쉬울 따름. 대신 1994년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 코미디연기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렇게 인기를 독차지해서인지 신동엽은 당시 SBS에서 활동하던 다른 코미디언들로부터 매우 심한 견제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특채로 발탁된 신동엽이 혼자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그보다 약간 늦은 시기에 SBS 공채 1기로 뽑힌 개그맨들은 대놓고 신동엽을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며 따돌렸고 다른 방송국에서 이적해온 선배 코미디언들도 고참인 자신들보다 인기를 얻는 신동엽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어느 날은 한 선배가 갑자기 자신을 화장실로 불러서는 '왜 자꾸 나대냐' 며 마구 싸대기를 때리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한 방송에서 토크 중에 했던 이야기에 따르면, 신동엽이 개그 아이디어를 냈을 때 어떤 선배 하나가 "그게 웃기냐?'면서 의자를 집어던지며 화를 냈는데 며칠 뒤에 바로 그 선배가 동엽이 냈던 그 아이디어로 녹화를 했고 그 개그로 대박이 났다고 한다.
당시 신동엽은 자신이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이 하도 어이도 없고 분하기도 해서, 한창 잘 나갔을 때도 '개그맨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자' 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었다고 말했다. 이후 신동엽의 유튜브에 출연한 최양락과 이봉원의 증언으로는 두 사람처럼 이미 정점에 있던 선배 개그맨들은 후배인 신동엽의 재능을 인정하면서 그를 잘 대해주었으나 신동엽이 데뷔하기 전에 애매하게 인기를 얻고 있었거나 연공서열상 중간에 끼인 선배 개그맨들이 신동엽을 그렇게 미워하고 못 살게 굴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신동엽을 괴롭힌 개그맨들 중에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개그맨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사실 신동엽의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레일맨>이라는 코너가 방송을 타게 된 것도, 코너에서 신동엽 본인이 주역을 맡을 수 있었던 것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방송에서 신동엽이 밝힌 바에 따르면 갑자기 코너 하나가 심의에 걸려서 방송을 못 타게 되자 땜빵용으로 종영된 기존 코너의 기차 세트를 사용하여 코너를 급히 만들어서 방송으로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PD가 선후배 가릴 것 없이 모든 개그맨들에게 코너의 아이디어를 모집했다고 한다. 이 때 다른 개그맨들은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내용"을 벗어나지 못하는 고리타분한 아이디어만 제시했는데 불현듯 신동엽이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정신병자가 기차 승객들에게 대뜸 말을 걸어서 승객들이 당황하면 이를 보고 신이 나서 계속 아무말 대잔치를 하는 개그"라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에 감탄힌 PD가 신동엽의 아이디어를 채택,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신인 개그맨들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 아이디어를 PD들에게 보이지 않거나 다른 선배 개그맨들에게 주연 자리를 넘기고 본인들은 조연으로 활동하는 것을 일종의 선배 개그맨들에 대한 예의 혹은 암묵의 룰로 여기고 있었기에 신동엽은 감히 PD에게 자신이 코너주를 맡고 싶다는 어필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PD가 대뜸 신동엽에게 "네가 낸 아이디어니까 네가 코너주해라"라고 해서 간신히 신동엽이 코너의 주연을 맡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어 정식 코너가 된 게 <레일맨>이었다고 한다.
1996년 신동엽은 MBC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이라는 레전드급 시리즈의 주인공을 맡으며 타 방송사에 진출했다. 신동엽 본인이 방송에서 자신의 연예인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이 바로 타 방송사에 진출해서 남자셋 여자셋의 주연을 맡았던 것이라고 회고했을 정도로 그는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각오를 단단하게 다지고 열정적으로 작품에 임했고 같이 출연하는 연기자들과도 가족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특히 당시 신동엽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됐던 시기였는데 시트콤에 같이 출연한 김용림이 신동엽에게 큰 힘이 되주었다고 한다. 신동엽의 남자셋 여자셋 마지막 녹화현장.
이렇게 시트콤의 주연으로 출연하는 동시에 신동엽은 한국의 정상급 MC 중 하나로 여러 지상파 방송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당시 MC로서 신동엽의 특기는 다른 출연진들에게 디스를 불쾌하지 않게 거는 것이었다. 좀 민망할 정도로 게스트를 띄워주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짧고 굵은 멘트 한 방으로 절벽에서 밀어버리는 것이 당시 신동엽의 개그 스타일이었다.
MBC에서 남자셋 여자셋으로 큰 인기몰이를 했던 신동엽은 남자셋 여자셋 종영 이후 해당 시트콤의 메인 PD인 송창의와 함께 대한민국 지상파 방송 최초의 성인 시트콤 세 친구를 야심차게 준비한다. 원래 바람둥이 헬스 트레이너 역할을 신동엽이 맡기로 되어 있었는데 첫 녹화 2일 전 신동엽의 대마초 사건이 터져 제작이 연기되었고 신동엽의 공석을 조연 역할(세 친구들을 도와주는 형)로 내정되어 있었던 윤다훈이 매꿔서 촬영을 겨우 시작했다고 한다. 참고로 대마초 사건 후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초기에는 서로 어색해했지만 지금은 서로 친한 사이라고 한다. 언제는 윤다훈이 신동엽에게 한번 먹어보면 못 잊을 별미 음식이라며 닭껍질만 들어간 닭도리탕을 대접한 적이 있다고 한다.
SBS에서는 옴니버스 단막식 개그 프로그램이었던 "신동엽 김원희의 헤이헤이헤이"를 김원희와 함께 진행했는데 신동엽은 이 프로그램에서 거의 매회 변태 연기를 맡았다. 대놓고 변태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꽁트도 있었는데 제목은 "이상한 남자 닥터신". 주로 에피소드마다 바뀌는 여성 연기자를 상대로 변태 연기를 펼쳤는데 그 연기가 일품이었다. 방영된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될 정도이니. 심지어 게이 역할도 맡았다. 회상에서 좋아하는 남자로 나온 이종수와 결혼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장면에서 신동엽이 여자처럼 화장하고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홍렬 이후로 가장 할머니 연기를 잘하는 개그맨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KBS에서도 맹활약. 2001년 11월 8일부터 해피투게더의 MC를 맡아 진행했다. 초기에는 유승준과 진행했는데 2002년 1월 스티브 유가 병역기피 사건으로 입국이 금지되고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에 하차하게 되면서 위기가 찾아왔으나, 이를 잘 극복하고 2002년 6월부터는 이효리와 같이 동반 진행을 하며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고, 그 결과 2002년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참고로 신동엽이 KBS 연예대상 1회 수상자다. 2003년 10월 30일까지 진행한 후 유재석과 김제동에게 MC 자리를 넘겼다.
김구라의 말에 의하면 '신동엽은 현재 예능 MC와 패널들이 고액의 몸값을 받을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한다. 신동엽이 전성기 때 방송국에서 치고 빠지고 하면서 몸값을 한껏 올려놨고, 지금도 그 가격을 기준으로 해서 몸값이 책정되기 때문이라고. 사실 1,000만 원도 받는 사람이 드물던 시절 마의 벽이라고 일컬어진 5,000만 원의 벽을 깨버린 MC였다. 후에 자신이 세운 기록인 5,000만 원의 벽을 깨고 최초 1억 원을 받는 예능계 MC가 되어버렸다. 그 여파로 인기가 시들시들해진 개그맨들이 많이 예능계 MC 쪽으로 진출하게 됐다.
1998년 8월, 대마초를 자택과 친구 오모씨 집에서 피우는 등 6차례 흡연했다는 것과 미국에서 밀반입했다는 혐의로 1999년 12월 14일에 체포되어 구속됐고, 나중에 대마초 흡연은 유죄이나 밀반입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되어 2000년 2월 18일, 2,000만 원의 벌금형을 최종 선고받아 출소했다. 한때 신동엽과 결혼까지 약속하던 사이였던 이소라는 이 파장과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으며, 당시 MC를 하고 있던 한밤의 TV연예에서 차마 연인의 구속 소식을 전할 수 없어 방송을 펑크내고 하차하게 된다. 이후 2001년 8월 말에 이소라와 완전 결별했다. 이때 신동엽이 이소라의 섹스 비디오 테이프 유출을 막기위해 일부러 대마초 사건을 일으켰다는 황당한 루머가 생겨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믿고 있는 사람이 있을 정도인데, 신동엽은 그간 여러차례 공개적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고 오죽하면 2023년 이소라와 재회한 유튜브 영상에서도 이 루머가 사실이 아님을 언급했다.
대마초 사건이 일어난 날이 하필이면 그가 야심차게 준비하던 시트콤 세 친구 첫 녹화 이틀 전인 동시에 당시 신동엽과 이영자가 함께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률 35%를 찍어 전체 시청률 1위를 한 날이었다고 하니 그 충격이 대단한 사건이었다. 대마초 사건 이후 신동엽이 다시 방송에 얼굴을 비춘 것은 당시 유재석이 진행하던 MBC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 녹화 중 간식을 싸들고 찾아온 것이 최초였으며 이후 강호동의 천생연분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완전히 재기하였다.
신동엽이 출소 직후 거의 바로 방송 복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방송가 PD들의 서명운동을 통해서였다. 또한 신동엽이 MC를 맡았던 일밤의 신장개업의 출연자들도 모여서 신동엽의 구제를 위한 청원을 넣었다고도 한다. 즉, 평소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일반인들에 대한 신동엽의 협조적 태도와 방송가 관계자 사이에서의 우호적인 관계를 쌓은 덕분에 복귀가 빨랐다는 게 통설이다.
2003년 해피투게더 책가방 토크에서는 따로 언급이 없었지만,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충격고백, 폭탄선언 포함)'는 질문에 이 사건도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효리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를 말하면서 신동엽을 놀린 건 덤. 6분 27초 이후 역시 84회 이원종, 원상연, 이재용 방영분에서는 '경찰의 부름을 받고 달려간 적이 있다' 질문에서는 본인은 누르지 않았다. 이후 경찰이 아닌 검찰한테 (언급은 안 했지만) 이 사건 때문에 끌려갔다고 대놓고 자폭했다. 7분 0초 이후
시간이 흐른 2013년. SNL KOREA 시즌 4 2화에서 신동엽이 출연하는 '이엉돈의 먹거리 X파일' 코너에서 이 사건을 간접적으로 다루었다. 본인이 직접 웃음과 굴욕을 참으며 "이 대마, 저도 한때 참 좋아했는데요,"라고 말을 시작하다가 곧 그걸 당장 불태우려고 한다. 기름통을 들고 "내가 이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하며 아우성을 친다.
2014년 신해철 편에서도 오프닝에서 신해철과 똑같은 복장을 입은 출연진들을 보고 '무한궤도 당시 신해철', '넥스트 당시 신해철' 등등 비유를 하며 신해철의 변천사를 설명하다가 김민교의 얼굴을 보고는 신해철을 향해 "그러고 보니까 그 형이 대마를 언제 했던거죠?"라고 공격했다가 신해철에게 "아 신동엽씨 보다 바로 전에"라며 역공을 맞기도 했다.
2015년 시즌 6 AOA 편 '육룡이 나르샤'에서도 신동엽이 영 좋지 않은 작명을 해주자(ex. 이방광, 이방귀) 유세윤이 신동엽을 향해 작명을 해줬는데, "마초 중의 마초 큰 마초 대마초 어떻사옵니까?"라고 말하자, 대놓고 유세윤의 뺨을 쳤다. 당황한 표정과 유세윤의 뺨을 친 직후에 자신의 앞에 떡하니 이 대마초라고 뜬 자막 내리라는 말은 덤.
놀라운 토요일 2019년 2월 23일 방송분에서는 언타이틀 <날개>가 출제곡으로 나왔는데, 그 중 가사 정보에 구속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뜻밖의 멘붕을 하기도 했다.
대마초 사건 이후 다시 전성기가 도래할 무렵인 2004년, 신동엽은 당시 코미디계에도 있었지만 국내 MC들에게는 없었던 전문 기획사를 설립해 전문성을 키우고 MC들이 방송국과 동등한 위치에 서기를 바라며 고등학교 선배와 함께 DY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김용만, 유재석, 이혁재, 노홍철등의 쟁쟁한 네임드 연예인 여럿을 데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이 당시 신동엽은 사실상 연예계 은퇴를 생각하고 맡고 있던 프로그램들을 연이어 하차하면서까지 사업에 집중하였으나, 사업에 실패하고 원금 80억에 이자만 월 2,000이라는 엄청난 부채에 허덕이기도 했다. 2012년 연예대상을 받을 무렵에만 하더라도 출연료의 거의 전부를 빚 갚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신동엽은 복귀 후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나와서 "최고의 다이어트 방법은 마음 고생 다이어트"라며 이 때 너무 마음 고생을 많이 해서 살이 저절로 쭉 빠졌다는 사실을 유머로 승화시켰다.
그래도 DY 엔터테인먼트 사건으로 금전적인 손해는 별로 안 봤다는 것이 정설이다. 회사와는 일찌감치 남남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DY 소속 연예인과 달리 출연료가 회사로 가는 일도 없었다. 다만 믿었던 사람에게 대차게 뒷통수를 맞고 소송과 고소 등으로 아수라장이 된 것은 팩트이다. 자신이 빚이 많았던 것은 아이젝스라는 이름의 기능성 운동화 사업에 이름을 빌려줘서 생긴 손해와 보증을 잘못 서서라고 신동엽 본인이 방송에서 밝혔다.
이 신발 사업은 제품을 제대로 출시하기도 전에 쫄딱 망했다. 사업이 망하고 나서 신동엽을 믿고 운동화 프랜차이즈 대리점을 차렸던 업주들이 신동엽에게 소송을 걸었던 것은 덤이다. 참고로 그 당시는 마사이족 신발 등의 기능성 운동화에 대한 붐이 일던 시기였고 신동엽이 사업 설명회에도 참석해서 직접 사업 설명을 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오빠밴드 이름으로 라디오 스타에 나왔을 때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라며 의기양양하게 말한 그 사업도 바로 이 사업이었다. 신동엽과 친한 이수만이 당시 그에게 사업에 대한 여러 가지 충고를 해줬었는데, 신동엽이 설마 하는 심정으로 반쯤은 흘려보내다가 사업을 말아먹은 이후에 "형 그 때 좀 강하게 말해주지 그랬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2012년 경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온 사실이다.
이로 인해서인지 몰라도 2013년부터 지상파/종편/케이블을 가리지 않고 10개가 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그리고 2014년 1월 8일, 용감한 기자들 녹화 현장에서 공식적인 빚은 다 갚았으나 아내가 모르는 비정기 빚이 있어서 몰래 비자금을 마련할 거라는 농담을 했다. 이처럼 금전적인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2014년 봄 개편 이후에도 여전히 10개에 가까운 프로그램을 진행할 정도로 계속해서 다작 중이다. 이에 대해 신동엽의 설명은 "전성기 때 방송을 그만두고 다른 일(사업)을 하고 싶어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이제야 진정한 방송 일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으며, 다시는 사업 등의 딴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바쁘게 사는 중)". 방송에 막 복귀하고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는 김승우의 질문에 "사업 실패 후 '내가 그동안 너무 내 능력을 과신했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앞으로는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는 코미디언으로만 기억되고 싶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사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말빨로 돈을 버는 코미디언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미 쌓아올린 이미지를 가지고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버는 사업에 자연스럽게 엄청난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신동엽의 부활은 2011년 불후의 명곡, 안녕하세요의 진행을 맡게 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불후의 명곡 2에선 오로지 가수 소개만 하고, 빅토리에서도 역시 큰 비중 없이 진행만을 맡는다. 허나 그 짧은 멘트 내내 개그를 계속 터트린다. 주말 황금 시간대 수위를 아슬아슬 오가는 수준의 섹드립도 다수 남겼다. 이쯤 되면 국민 MC급에서 단순히 '웃기는 거'만으로는 최고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각종 시상식에서 보여주는 그의 애드립은 경악에 가까운 수준으로 시상식 진행으론 사실상 과거의 김용만, 현재의 김성주, 전현무와 함께 최강자 취급을 받는다. 국민 MC라고 불리는 유재석은 본인 스스로 생방 공포증이 있다고 하기도 했고, 강호동은 타고난 에너지와 파이팅 넘치는 스타일이 워낙 강해서 애초에 시상식 특유의 차분한 진행이 어렵다. 반면에 신동엽은 차분한 진행 속에서 다소 침체될 수 있는 분위기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꾸준히 올려놓는 게 가능한 훌륭한 MC라고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진행을 함과 동시에 상황에 맞게 치고 빠지는 애드립과 개그 센스는 대한민국 예능인들 중 최고라 할 수 있다.
이런 그의 장점 덕분인지 예능인으로서는 정말 드물게 2000년대부터 케이블 혹은 언론사에서 개최하는 나름 권위있는 대중가요 시상식들인 MKMF, 골든디스크 시상식, 서울가요대상을 모두 MC로서 진행해본 경험이 있다. 또한 MKMF 및 MAMA는 2008년부터 따로 MC를 두지 않아서 이 기록은 예능인으로서는 유일한 기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비록 멜론 뮤직 어워드를 아직 MC로서 진행을 한 경험은 없지만 애초에 멜론 뮤직 어워드는 2009년에 처음 신설되었고, 그마저도 2014년부터는 따로 MC를 두지 않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TV/영화부문을 통틀어 가장 권위있다고 평가받는 백상예술대상도 (2017년을 제외하고) 2014년부터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2010년 11월 13일부터 이영자, 컬투와 함께 일반인의 특이한 사연을 들어보고 순위를 매기는 프로그램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의 메인 MC를 맡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충공깽 급의 사연을 가진 일반인들이 등장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개그로 승화시키는 능력을 보여주며 유재석의 공감토크쇼 놀러와를 격침시키고 월요일 밤 예능 시청률 1위를 기록하게 된다. 특히 같이 MC를 본 이영자, 컬투와의 호흡이 잘 맞는다는 평.
2010년에는 윤종신, 길, SHINee의 온유 등과 함께 <밤샘 버라이어티 야행성>이란 토크쇼 형식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7개월 동안 진행했다. 여기서도 깨알 같은 애드립을 펼쳐 신동엽 플레이어까지 만들어졌다.
2011년 강호동이 세금 탈루에 휘말려 연예계 잠정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듬해 4월 10일부로 신동엽이 MC를 맡는 강심장이 방송되었다. 본인이 웃기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남의 토크를 살리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하고 폐지 위기에 빠진 강심장을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공동 MC인 이동욱이 아무래도 전임 이승기에 비해 예능감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이루어낸 성과. 이때 만들어낸 전설적인 섹드립도 다수 존재.
삼성생명의 'Future30', '보장자산 바로알기 캠페인' 광고를 촬영한 적이 있다. 2012년 7월에는 BBC의 다큐멘터리 Planet Dinosaur의 나레이션 더빙을 맡았다.
2012년 8월 17일 부로 신동엽과 강호동이 SM엔터테인먼트의 전속 계열사인 SM C&C에 유상증자를 받고 전속계약을 체결하여 SM 소속 연예인이 되었다. 끼워팔기가 더 판칠 거라는 예상도 있지만 강심장에는 원래 SM 소속 연예인이 고정 출연을 하고 있고,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서의 게스트는 별 의미가 없으므로 큰 의미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2012년에 KBS 연예대상을 10년 만에 다시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2013년 2월 19일부터 SBS에서 방영하는 토크쇼 화신 - 마음을 지배하는 자에서 김희선과 함께 MC로 출연하였는데 출연진 음료로 무알코올 맥주를 제공했으며(술자리 같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인 듯.) 2013년 8월 27일에는 <더 화신 라이브>라는 이름으로 무려 생방송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2013년 8월 2일부터 19금 연애상담 방송을 표방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마녀사냥의 메인 MC로 출연해서 물 만난 고기마냥 활약한 결과 2014년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 예능상을 수상했다.
2016년에는 자신이 데뷔한 방송사 SBS에서 데뷔 25년 만에 TV 동물농장과 미운 우리 새끼로 SBS 연예대상을 수상했다.
2022년에 2012년 이후 KBS 연예대상을 10년 만에 다시 거머쥐면서 10년 주기로 KBS 연예대상을 받는 기록을 이어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