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축구인 ,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 거스 히딩크 , Guus Hiddink

 

이름
거스 히딩크
Guus Hiddink
출생
1946년 11월 8일 (77세)
헬데를란트주 비스 파르세벌트
국적
네덜란드 국기
 네덜란드
신체
182cm
직업
축구 선수 (중앙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소속
선수
더 흐라프스합 (1967~1970)
PSV 에인트호번 (1970~1972)
더 흐라프스합 (1972~1977)
NEC 네이메헌 (1977~1981)
→ 워싱턴 디플로매츠 (1978 / 임대)
→ 산호세 어스퀘이크스 (1980 / 임대)
더 흐라프스합 (1981~1982)
코치
PSV 에인트호번 (1983~1987 / 수석 코치)
감독
PSV 에인트호번 (1987~1990)
페네르바흐체 SK (1990~1991)
발렌시아 CF (1991~1993)
발렌시아 CF (1994)
네덜란드 대표팀 (1995~1998)
레알 마드리드 CF (1998~1999)
레알 베티스 (2000)
대한민국 대표팀 (2001~2002)
PSV 에인트호번 (2002~2006)
호주 대표팀 (2005~2006)
러시아 대표팀 (2006~2010)
첼시 FC (2009)
튀르키예 대표팀 (2010~2011)
안지 마하치칼라 (2012~2013)
네덜란드 대표팀 (2014~2015)
첼시 FC (2015~2016)
중국 U-21 팀 (2018~2019)
퀴라소 대표팀 (2020~2021)
기타
PSV 에인트호번 (2019~ / 기술 고문)
국가대표
없음
종교
무종교
가족
동거인 엘리자베스 피나스


축구 역사상 단 9명 밖에 없는 유러피언 트레블을 달성한 감독으로, 클럽 팀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모두 성공적인 커리어를 남겼다.

주요 성과로는 에인트호번의 1987-88 시즌 유러피언컵 우승과 트레블, 그리고 에레디비시 6회 우승, 첼시의 2008-09 시즌 FA컵 우승, 네덜란드의 1998 프랑스 월드컵 4위, 대한민국의 2002 한일 월드컵 4위, 호주의 2006 독일 월드컵 16강, 러시아의 유로 2008 4강이 있다.

2021년 9월 10일, 공식적으로 감독 은퇴를 발표함으로써 지도자를 포함한 54년간의 축구인 경력을 완전히 마감했다.

히딩크는 처음부터 프로선수가 되고자 다른 선수들처럼 유스팀에 입단해서 프로선수가 된 것이 아니라 네덜란드 스포츠 전문대학(CIOS)에 입학하여 지도자를 목표로 했다고 한다. CIOS 졸업 후 2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 더 흐라프스합의 코치로 부임했지만 나이도 스물이고 기량도 괜찮았기 때문에 감독이 선수 겸 코치로 활동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의를 해 곧바로 수락했다고 한다.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


1960년대 당시, 에레디비시는 AFC 아약스나 PSV 에인트호번같은 강팀을 제외하곤 급료도 부족한 편이어서 선수들 대부분이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 훈련하는 투잡을 뛰었다고 하는데 히딩크는 코치직을 겸임하고 있었으므로, 오전에 유소년을 지도하고 오후에 팀 훈련에 참가했다고 한다. 더불어 야간에 체육 전문대학에 입학하여, 체육교사 준비도 같이 했다고. 3시즌 동안 데 그랴프샤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PSV로 이적하였는데 주전 경쟁이 심하여 제대로 출전하지도 못했다. 다시 데 그랴프샤프로 이적했고, 후에 네이메헌으로 이적했다.

네이메헌 시절에는 체육교사와 선수를 겸임했는데 특수학교에서 장애아들을 지도하면서 얻은 경험이 훗날 감독 생활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네이메헌 시절에는 시즌 종료 후 즉, 5월부터 다음 시즌이 시작되는 9월 즈음까지 미국에 잠시 임대되어 미국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당시 룸메이트가 조지 베스트였다고. 네이메헌에서 은퇴 후 다시 더 흐라프스합으로 돌아와 코치 생활을 시작했지만 선수가 부족한 탓에 감독의 부탁으로 1시즌 더 선수생활을 하게 됐다. 포지션은 리베로. 하지만 1981/82 시즌을 끝으로 완전하게 은퇴한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에서 벌어들인 광고 수입과 인세를 실제보다 적게 신고했다는 혐의와 월드컵 직후 조세 피난처로 알려진 벨기에 아셀에 집을 얻은 뒤 거주지 허위 신고를 해 17억 가량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인해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이던 2006년 7월 탈세 혐의로 네덜란드 검찰에 의해 법정에 기소되었다. 이후 2007년 1월과 2월 각각 1, 2차 공판에 나서 본인의 무죄를 주장했으나, 결국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6개월 집행유예와 벌금 45,000유로(약 5,500만원)를 선고받았다.

히딩크 입장에서는 그나마 실형을 모면한 것이 다행스러운 점이라는 입장이었으나, 이로 인해 그동안 국제 축구계에서 쌓아온 명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에 히딩크의 커리어에 있어서 상당한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후 히딩크는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과 첼시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부정적인 시선들을 어느 정도 거두는 데 성공했으나, 히딩크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끊임없이 거론되는 사례로 남게 되었다.

네덜란드어의 g의 발음은 /x/으로 한글로 표기하면 후스 또는 휘스 히딩크가 좀더 가까우며, 2005년 제정된 네덜란드어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휘스 히딩크로 표기된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부임하기 이전 한국 언론에서는 주로 '후스' 히딩크로 표기하였으나, (좀더 쉬운 영어식 발음인) '거스'라고 불러 달라는 본인의 요청이 있은 이후 대한민국 언론에서는 영어식 발음인 '거스' 히딩크로 표기한다.


히딩크의 가문은 고향인 파셰펠트에서 수백년간 뿌리를 내린 명성이 있는 집안이라고 한다. 그의 아버지 게트 히딩크는 2차 대전 당시 겉으론 시청 공무원직을 수행하며 암암리에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는데, 직접 총을 들고 싸우진 않았지만 유대인들을 숨겨주거나 배식표를 빼돌려 그들의 끼니를 해결해 주었고, 독일군이 배급하는 식량을 빼돌려 레지스탕스의 군량을 조달했으며, 적지에 떨어진 미군 조종사들을 중립국으로 피신시키는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전쟁이 끝난 뒤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장을 전달받았다.

6명의 형제 중 3남으로 태어난 히딩크는 어린 시절 개구쟁이로 학교 수업을 자주 땡땡이를 치고는 했다고 한다. 사냥을 좋아하는 외할아버지가 부추겼다고 하는데, 덕분에 외할아버지로부터 모험심이나 결단력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아예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입수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개구쟁이가 공차는 걸 좋아해서 결국 축구선수가 되었다.


대한민국 감독은 원래 2001년부터 2002년까지 1년 계약을 했지만, 4강 신화 이후 2년을 추가로 계약해 2004년 2월까지 광고 모델로 활동했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유명한 광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