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 박상민|朴尙民|Park Sang Min

배우 - 박상민|朴尙民|Park Sang Min

출생
1970년 10월 19일 (53세)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국적
대한민국
본관
밀양 박씨
신체
177cm, 72kg, A형
가족
아버지 박성태, 어머니 이희자
3남 중 셋째, 아내(2019년 결혼~현재)
학력
성동초등학교 (졸업)
광희중학교 (졸업)
성동고등학교 (전학) →
광남고등학교 (졸업)
서울예술전문대학 (영화과 / 전문학사)
병역
병역면제(좌슬관절 불안정성)
종교
무종교
데뷔
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
소속사
유엠아이엔터테인먼트



어릴 적 부유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고 한다. 태어난 곳은 진해지만, 전체적으로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서울특별시이다. 그리고 공부에는 관심이 적었지만, 운동에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고뭉치 기질이 있는 데다가 운동신경이 좋다 보니 학창시절에 싸움이나 기타 사고를 많이 쳤었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속상해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 번은 학교 국어교사가 수업시간에 좀 진도가 남는 경우에 항상 자기가 좋아하는 고전 명시를 소개하면서 교과서에 안 나오는 내용이지만 자세히 설명한 적이 자주 있었는데, 공부에 관심이 별로 없던 그였지만 지겹도록 그 시를 듣는 바람에, 이후에 아버지와 함께 작품 전시회에 갔다가 그 시가 걸려 있는 걸 보고 익숙함에 혼자 생각없이 줄줄 읽다가 이를 들은 전시 관계자가 "너 이 시를 아느냐?"고 묻자 그가 안다며 작가 이름까지 말해버렸다고 한다. 이에 그가 크게 놀라며 박상민의 아버지에게 "얘는 천재다!"라면서 훌륭한 학자가 될 수 있다며 전문 교육을 시키라고 하는 바람에 그의 아버지가 어이없어했다고 한다.

1990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 신인배우 공개 오디션으로 데뷔했었다. 주인공 김두한 역으로. 쉽게 말해서 어떻게 된 게 데뷔작부터 주연이었다. 그것도 오디션을 봤던 게 1989년이었다. 그야말로 20살 서울예대 1학년 시절 그 어린 나이에 바로 합격한 것. 거기다가 장군의 아들은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대박이 났다. 3편까지 찍었었다. 오디션에 임하던 당시 이미 그는 고등학교 때 수영과 육상을 했던 경력이 있어 몸이 좋았으나, 격투장면이 많은 영화 오디션이라 스스로 부담이 되어 최종 1차 오디션에 감독 임권택 앞에서 무술 경력이 있다는 거짓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윗옷을 벗고 근육을 보여 줄때까지는 좋았는데 운동신경에 비해 무술시범이 어설프자 감독 임권택이 거짓말인 걸 알아채고 대놓고 "뻥치고 있다"고 하는 바람에 박상민은 그 망신에 매우 민망함은 물론 떨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 영화제작자까지 나와서 두 사람 앞에서 2차 오디션을 하게 되어 그때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무술 경력이 없고 수영과 육상 경력만 있다고 얘기했고 임권택이 전날에 이어 "왜 또 뻥 쳐보지.."라고 했음에도 이북 출신의 터프한 성격을 가진 영화제작자 이태원이 그의 몸을 보자마자 "어유 이 새X 몸 좋구만 기래.."이라고 하면서 마음에 들어했기에 뽑힐 수 있었다고 한다. 웬만한 배우들도 받기 힘들다는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을 1990년, 1991년 2년 연속 수상했다. 이 시기 청소년들이 박상민을 영웅처럼 섬겼다고 할 정도니 인기가 어땠는지는 더 이상 생략한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때 그 심정을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어 있었다'라는 말로 정리했다. 그러나 과거 몇몇 방송에서 그 스스로 증언한 바로는 이 시기에도 욱하는 기질은 남아 있어 길가다 행인이 그를 알아보고 시비를 걸때 싸운 적이 꽤 있다고 한다. 한번은 장군의 아들로 알려진지 얼마 안 됐을때 사람들과 술먹고 혼자 집에 가다가 한밤중에 정말 인적 없는 곳에서 불량배 여러명이 "어 저거 박상민 아냐"하고 부르더니 갑자기 쌍욕을 하면서 "네가 그렇게 주먹 좀 잘 쓰냐"며 시비를 거는 바람에 싸우다 진짜 위험한 상황에 처할 뻔한 적까지 있었다고.

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연기자가 그렇듯이 박상민도 김두한 역의 강한 인상과 군대 문제 때문에 부진에 빠지기도 했었다. 심지어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을 연기한 것 외에는 사실상 연기 경력이 짧은 신인 배우일 뿐인데, 충무로에서 잘 나가는 배우 행세를 하다가 되려 제작자 및 감독들에게 많이 찍히기도 했다. 그 일화 중 하나를 들자면, 1995년에 안성기, 김혜수와 함께 주연을 맡은 이명세 감독의 남자는 괴로워에 출연 당시 제작사에 억대의 출연료를 요구하고 촬영장에서도 어린 제작진들을 함부로 대하는 등 문제를 일으켜 끝내 감정이 폭발한 이명세 감독에게 죽도록 뺨을 맞았다는 이야기는 전설이다. 덤으로 무릎 부상을 심하게 입어 군면제를 받았는데, 이 또한 문제가 되어 한동안 충무로에 돌아오지도 못했었다. 대사처리나 성량의 문제가 좀 심해서 이규화가 전문 성우로 후시녹음을 하기도 했다. 이후 다양한 연기변신을 시도하면서 부단히 노력했지만 의외로 망작이 많았다. 영화 남자는 괴로워에서 맡은 코믹한 연기가 그 예. 공형진과는 반대로 된 것이다.

사실 박상민의 삭막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의 딱딱한 얼굴로 코믹한 연기를 하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다. 재미있게도 공형진은 1969년 생으로 나이가 비슷한데, 박상민과는 거의 정반대의 인생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코믹연기와 중후한 연기의 차이도 그렇고, 주연과 조연의 차이도 그렇고... 단, 공형진은 추노에서 주연을 맡은데다가 이미지 변신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연기 욕심은 있는지 감독한테 연기 문제로 욕 먹으면 밤에 잠자리에서 소리죽여 울기도 한다고(...)...

드라마에는 1995년 이정재, 전도연, 이종원과 출연한 SBS 수목 드라마 사랑은 블루에 첫 출연한다. 그 이후로 주로 스크린보다는 TV에 모습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 그의 최고 연기는 젊은이의 양지에서 서울대 경영학도를 형으로 둔 건달 연기, 형제의 강에서 걸직한 농촌총각 순정남 연기, 여인천하에서의 정난정의 연인 연기등이 대표적. 여인천하가 아주 늘어나면서 PD와 트러블이 생겨서 도중하차한다. 오죽하면 비중이 하도 줄어서 나무 뒤에서 보는게 전부라는 말이 있었다. 원래 설정에 따르면 마지막회에 쓸쓸이 죽는 정난정의 임종을 지켜보는 역이었다고 한다. 2010년 SBS 드라마 자이언트에 출연하여 이성모 역으로 열연했다. 어찌 된 게 이강모 역을 맡은 이범수보다 팬이 더 많다고...

부동산 쪽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를 타는 연예인으로 유명하다. 드라마 관련으로 외제차 협찬을 받으려고 했는데 자동차 회사 측에서 거절하자 열 받아서 사비로 질러버렸다고 한다. 세계에서 몇 대 밖에 없는 한정 기종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차는 실제로 드라마에 나왔다. 자이언트 드라마 세계에서는 조필연에게 복수하려는 국정원요원이지만 현실에서는 자이언트 출연배우 중 압도적인 재산을 자랑한다. 자이언트 출연배우 재산 다 합쳐도 박상민의 재산에 못 미칠 거라 카더라!

연기 변신에 힘쓸 때 맘먹고 찍은 게 불륜남 연기. 대선배 고두심의 애인으로 나와서 비극적인 사랑을 연기했다. 이때 고두심과 키스하는 장면이 유명했는데, 몇년전 공개된 박상민의 방에 고두심과 키스하는 스틸 사진이 크게 출력돼서 벽에 걸려 있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 고두심과는 훗날 덕이에서 모자관계로 만난다.

그 외에도 영화 마리아와 여인숙에서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이정현과 무려 베드신도 찍었다.

연예계 주당으로 유명하다.

참고로 국내에서 대표적인 영국 요리의 피해자이다. MBC 〈세상의 모든 여행〉에서 박상민이 스코틀랜드에 가 대표음식이라며 유명하다는 한 가게에서 피시 앤드 칩스를 사 먹고... 이후 그는 그걸 몽땅 갈매기에게 줘버린다. 방송 장면.

젊은이의 양지에서 한창 열연하던 1995년 9월 8일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해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 여자아이였던 전혜진 씨를 찾기도 했다.

특이하게도 영화로 먼저 데뷔한 영화배우인데, 장군의 아들이 데뷔작 겸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일한 대표작이란 거다. 물론 망작들이 많았지만, 필모를 찾아보면 1996년에 개봉한 나에게 오라에서의 연기는 당시 평단과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물론 흥행에 대 실패했지만... 그리고 드라마에 출연하면 오히려 인기가 높아진다. 거칠면서 순둥순둥한 이미지가 특히 일부 여성들에게 어필되는 면이 있는 듯... 하지만, 배우 생활 전체로 보면 영화보다는 드라마에서의 출연작들의 질이 좋으며, 데뷔작에서 너무 뜬 나머지 장기적으로 심사숙고 하는 과정이 생략되다 보니 각종 사건사고에 휩쓸렸고, 그 결과 배우로써의 기회가 오지도 못하고 이를 잡지도 못한 게 오늘의 결과를 불러왔는지도 모르겠다. 장군의 아들 1탄만 하더라도 전국적인 유명 배우가 되었는데, 2탄부터는 하야시를 연기한 신현준이 충무로 영화판 및 관객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인기가 조금씩 수그러 들다가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배우로써의 위치나 대중적인 인기가 아예 역전당하고야 말았고, 그것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긴 해도 신현준이 2013년 결혼 이후 아예 연기 활동을 접은 수준의 행보를 보여주는 반면 박상민은 주조연급이라도 꾸준히 연기하고 있다.

하지만 연기폭도 아직까지도 그다지 넓은 편이 아니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주로 독고다이하는 강인한 남성상, 악역을 맡아왔고, 아무리 순둥한 역할이라도 해도 그 역할이 아닌 '김두한'으로만 보인다는 게 함정. 아마도 다양한 역할을 연기할 기회를 위의 이유로 잡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노총각이었다가 영어 전문가와 결혼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 처음 공식적인 이유는 성격 차이였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업(중국집 운영)과 관련하여 서로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이혼 과정을 밟던 도중 박상민 측에서는 "아내가 시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않았다.", 아내 측은 "박상민이 폭력을 행사했다."라며 맞고소하는 추태가 벌어졌고, 1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2심에서 박상민에게 벌금형 20만 원을 선고했고, 박상민이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에서 원심을 확정했다. 이혼 소송에선 재산분할을 박상민 85, 전 아내가 15로 분할되었다.

5년만에 이혼소송이 마무리가 됐다. 이 때 정신적으로 크게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당시 정신과 의사가 이대로 계속 악화되면 자살하거나 아니면 살인을 저지를 성향이라 할 정도로 심각했단다.

이후 2019년에 11살 연하의 여성과 재혼했다.

1997년, 2011년, 2024년 총 3차례의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