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李順載|Lee Soon-jae
출생
1934년 11월 16일 (89세)
함경북도 회령군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본관
광주 이씨 (廣州 李氏)
신체
165cm|68kg|260mm|A형
학력
경성아현공립국민학교 (졸업)
서울중학교 (졸업)
대전고등학교 (전학)
서울고등학교 (5회 /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철학 / 학사)
가족
아버지 이용남(1908 ~ 1970), 어머니 전분녀(1913 ~ 2008)
배우자 최희정(1940년생, 1966년 결혼)
아들 이종혁(1967년생), 딸 이정은(1970년생)
직업
배우 (1956년~현재)
국회의원 (1992년 5월 30일~1996년 5월 29일)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4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1958~1961)
종교
무종교 (무신론)
현직
사단법인 한반도평화네트워크 총재
가천대학교 연기예술학과 명예석좌교수
SG연기아카데미 원장
데뷔
1956년 연극《지평선 너머》
별명
이순대, 야동순재
대한민국의 배우 겸 연극 연출가이자 전직 국회의원. 가천대학교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이다.
1934년 11월 16일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아버지 이용남(1908~1970)과 어머니 전분녀(1913~2008)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3살 때이던 1937년 가족들과 함께 생계를 위해 만주국 간도성 연변(延邊) 지역으로 이주했다가 이듬해인 1938년 홀로 조부모가 살던 경기도 경성부로 돌아와 6.25 전쟁 때 충청남도 대전군으로 피난간 것을 빼면 대부분의 생애를 서울특별시에서 보냈다. 국민학교 3학년 때이던 1943년 잠시 고향인 회령군을 방문하기도 했으며, 1945년 8.15 광복 후 부모님도 서울특별시로 내려왔다. 유년 시절에는 유치원까지 다닐 정도로 부유했으나, 이후 집안 사정이 나빠져 국민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와 함께 비누 장사를 했는가 하면, 중학생 때는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고 나서 월사금(수업료)을 안 내도 아무 말 없었다고 한다.
서울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0년 6월 25일, 남동생 이명재(1937~1994)의 수영복을 사러 갔다가 군인들의 부대 복귀를 종용하는 즉, 6.25 전쟁이 일어났다는 방송을 들었다고 한다. 꽃보다 할배 사전 미팅 당시 "배낭 여행을 해본 경험이 있으신지?"라는 PD의 질문에 "6.25 때!"라고 대답해 PD를 놀라게 하거나, 2019년 해피 투게더에서 신구와 함께 출연하면서, 만화영화 얘기를 하는데, 유재석이 두 사람에게 어릴 적 본 만화가 있으셨냐는 질문에는 "일제 때 태어나서 볼 리가 있겠나마는 손오공이나 디즈니 만화는 본 적 있는 것 같다."()고 하는 등. 6.25 전쟁 발발(勃發)시 고등학생이었다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소속으로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반면 2005년에는 열린우리당 이상수의 후원회장을 맡아 화제가 됐었다.
2024년 현재 한국 현역 최고령 연예인이자 배우이며, 한국 방송 역사의 산증인 중 한 사람으로 동시대 많은 배우들의 롤모델이자 멘토로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배우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 이후 젊은 시절부터 지성적인 이미지와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영화, 연극, 브라운관을 오가며 70년 가까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완벽한 자기 관리와 지치지 않는 열정,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열린 마인드로 젊은 세대에게도 진정한 어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tvN 꽃보다 할배를 통해 보여준 여러 모습들이 계기가 된 것 같다. 배우들 사이에서도 그에 대한 존경이 담긴 미담이 많기로 유명하다.
또한 모음 체계상 장단음 구분과 10모음 체계를 가진 옛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배우이다. 연기론적 측면에서는 후배인 박근형, 윤여정과 전통적인(재현적) 연기론을 지향하는 대표적인 배우이다. 재현적 연기는 메소드 연기와 함께 현대 연기론의 큰 줄기를 이루는 연기이론이다. 메소드 연기와 재현적 연기는 대비되는 연기 철학을 가진다. 90대의 고령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뛰어난 암기력, 해박한 지식인의 소양에서 나오는 깊이 있는 작품 분석력, 정확한 한국어 구사에서 나오는 대사 전달력, 허스키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시원한 발성은 대배우 이순재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장점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현재까지도 아흔에 근접한 고령에도 연극, 드라마, 영화를 가리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4년 현재까지도 이 세군데를 모두 섭렵하는 배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특히 2021년에는 연극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대작 리어왕에서 최고령 리어왕역을 맡아 3시간이 넘는 장기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2022년에는 안톤 체호프의 대표작인 대작 연극 갈매기의 연출을 맡아 연극 연출가로서의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진정한 어른이 별로 없는 현 시기에서 대중문화예술계에 몇 남지 않은 사표(師表)로서 평가 받으며 올곧게 배우라는 길을 걸어온 인물이다. 60년이 넘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발전 공로를 국가로부터 인정 받아 2018년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대한민국 문화훈장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TV방송사인 대한방송의 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한국 TV산업 초창기부터 활동해온 남자 배우로서 생존해있는 마지막 인물이라고 할 만큼 경력이 오래되었다 보니, 연기계를 떠나 연예계에서 원로로서 받는 위상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클래식 할리우드 세대 중 말년인 201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연기활동을 했던 미키 루니가 평가받았던 것과 비슷하다.
이정재, 최지우, 김태희, 김명민, 이서진, 하지원, 이승기, 한지민, 유연석, 신세경, 황정음 같은 젊은 배우들부터 이덕화, 유동근, 김영철, 백일섭, 장용, 정보석, 최수종, 배종옥 같은 중견 배우들도 대표적으로 이순재를 항상 롤모델이자 멘토로 뽑는 후배 배우들이다.
2022년 대한민국 최고령 연예인이었던 송해가 사망하자 국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최고참 현역 연예인 타이틀을 이제 그가 물려받게 되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연기 역사의 산증인. 그리고, 이순재는 2024년 생일을 맞으면 나이가 90세가 된다. 송해가 생존해 있던 당시에도 연기자들 가운데서는 오래전부터 최고령 현역 연예인이자 최고참 선배의 대우를 받아왔으며, 가장 상징적인 원로 배우로 여겨져 왔다.
선배나 동년배 중에 더 이상 현역 연예인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이순재를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연예인은 거의 없다. 안티 컨셉인 왕비호로 분한 윤형빈도 이순재를 까라는 요청을 본인이 진짜로 욕을 먹을까봐 계속해서 거절했는데 그나마 농담조로 "어이 이순재" 라고 했고 그마저도 바로 "죄송합니다" 라고 꼬리를 내렸을 정도.
그 특유의 먼저 모범을 보이는 태도는 항상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보통 이순재 정도 되는 원로배우는 촬영 시간을 앞당겨 주는 것이 관례인데도 다른 배우들이 자신 때문에 촬영 시간이 늦춰지는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몇 시간씩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야인시대 김두한과 태조 왕건 궁예로 유명한 배우 김영철은 당시까지만 해도 촬영장에서 제작진들을 갈구며 가장 먼저 촬영하게끔 하는 촬영장의 호랑이로 유명했는데, 본인보다 한참 선배인 이순재의 이러한 마인드를 보고 크게 반성했다고 한다.
송해는 공적인 자리에서 젊은 연예인들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으나, 이순재는 그와 다르게 후배 연예인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했을 때 따끔한 소신 발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통 연예계에서 사고가 터질 경우 언급 자체를 안 하려고 하지만, 이순재는 그런 거 없이 일침을 가한다.
2018년 3월경에는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일침을 날렸다. 한 방송에서 '미투운동을 접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제자나 부하를 내 마음대로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분들 다 아는 분들이라 깜짝깜짝 놀란다. 설마설마했는데 사실화됐다"며 "관객들이나 국민들한테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고 꿈을 접은 후배들을 향해서는 "자기 탓이 아니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시 (연기) 할 수 있게 돼야 한다"고 연기 재개를 권유했다. 반면 가해자들을 향해서는 "이 분야를 다 떠나야 한다. 다 끝을 내야 하지 않겠나"라며 "다들 깊이 반성하고 평생을 그렇게 살겠다고 약속했으니 지금 한 약속을 잘 지키고 '나 죽었소'하고 평생 엎드려 있으라"고 충고했다.
2018년 4월 20일에 공개된 차이를 넘어 묻고 차이를 넘어 답하다(차문차답) 캠페인에서 5세, 8세, 10세 어린이들이 평소에 궁금해하던 것을 이순재에게 묻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 중 한 여자아이가 '미투가 뭐예요?'라고 묻자 '그런 말을 알 필요도 없고 그런 말을 생각할 필요도 없어. 너희 때는 그럴 일 절대 없을 테니까' 라고 답을 해 주었다.
버닝썬 게이트가 터지자 2019년 3월 2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영화 ‘로망’ 기자회견에서 이 사태에 대해 "연예인은 공인은 아니지만, 행위 자체가 전파성이 있어서 공인 역할과 개념이 있다. 조심하고 절제해야 한다", "연예인이 특권이 어디 있나. 특권의식은 의식에 달린 거다. 연예인이란 결국 인기가 필요한 직업이지만, 요새 착각하는 친구들이 많더라", "'내가 연예인인데 자유분방하면 어때, 그게 예술이야’라고 주접떠는데, 그러면 안 된다", "빌붙어 비즈니스 같은 게 들어와도 넘어가면 안 된다.", "승리 같은 경우도 그렇다. 30살밖에 안 됐는데, 주변에서 바람을 넣는다.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하는 일에 끼어들면 잘못 말릴 수 있다. 우리 선배들도 예전에 그러다가 거덜 난 사람 많다. 나 때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자기들이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고 좋은 연기, 좋은 노래 하면 되는데 왜 그런 사업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라고 지적하며 "버닝썬 사건은 사회적 패악에 대한 문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고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고 주변의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면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2019년 4월 12일 해피투게더 시즌4에 출연해서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하였다. "본인 세대는 인기가 곧 수익성으로 연결되는 세대가 아니었지만, 요즘은 달라서 그런지 뭘 잘못 생각하고 사는 것 같다." 라는 말과 함께, 연예인이 비록 공인은 아니지만 대중에게 영향력이 커서 공인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고 하면서 법적 판단과는 별개로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언급했다. 여담으로 당시 방송 흐름상 자연스럽게 나온 말은 아니고, 사전 인터뷰 때부터 해피투게더 측에 양해를 구한 다음 중간에 시간을 마련해서 말한 것이다.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시청할 수 있는 공영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인 만큼 출연한 김에 작심하고 쓴소리를 날린 것으로 보인다.
2022년 5월 19일 영화 <안녕하세요> 인터뷰에서도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였는데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지만 어느 정도 공인적 성격을 띠고 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있고, 특히 젊은 친구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우리부터 법규를 잘 지켜야 한다." 라고 언급을 하였다. 정황 상 바로 전날에 있었던 김새론 음주운전 사건에 대해 간접적으로 에둘러 설명한 듯한데, 그 기사를 보았다고 했으며 "절대로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연예인은) 대중을 상대한다는 점에서 정치인과 비슷하다. 그런 의미에서 항상 절제를 하고 조심해야 한다. 나로 인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고 근신해야 하며 돈을 많이 벌고 인기가 있다고 해서 어깨에 힘주고 다니지 말고 늘 겸손하고 감사해야 한다." 라며 쓴소리를 하였다.
하지만, 호통뿐만이 아니라 칭찬도 많이 하는 편이다. 범죄도시 2 마동석 때문에 본인의 영화가 기를 못 편다고 너스레를 피우며 한국뿐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설치게 되어 너무나도 좋다고 범죄도시 2를 칭찬하였으며 방탄소년단에 대해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리 방탄소년단'이라고 부를 줄을 누가 알았겠냐고 단순히 알려진 정도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방탄복을 벗고 전세계를 석권하러 다닌다고 표현하였다.
매우 친했던 동료 배우이자 같은 대학 출신인 이낙훈이 먼저 정치 활동을 하면서 같이 하자고 권유한 것이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80년대에 민주정의당에 입당했다.
선거 자금 문제와 본인의 연고가 없는 지역구 공천으로 인해 난색을 표했으나, 당에서 선거비를 전액 지원 받아 1988년의 13대 총선에 민주정의당 후보로 중랑구 갑 선거구에 나왔지만, 평화민주당의 이상수에게 근소한 차이(32.3% 대 31.4%, 759표 차이)로 패했다. 첫 번째 선거에서는 따로 선거운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는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당시 현역 의원이었던 민주당 이상수 후보를 제치고 서울 중랑구 갑에서 당선되었다(48.7% 득표, 46,297). 이후 1993년 잠시 민자당 부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비록 선거에서 경쟁 후보로 만났지만 이때 만난 이상수 전 의원과 친해져서, 이후 총선에서 이상수 전 의원이 2005년 재보궐선거에 열린우리당으로 출마했을때 선거운동(정확히는 선거후원회장)도 약간 해줬다고 한다.
선거 이력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본래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 소속이었지만 1996년에 정계를 은퇴함과 동시에 탈당한 이후로는 당적을 가진 적이 없다. 17대 대선 때와 18대 대선 때는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을 지지했다. 18대 대선 당시에는 박근혜 후보의 자문기구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 합류했다.
다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탄핵 정국이었던 2017년 1월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 성적을 올려달라고 요청했던 학생과의 일화를 이야기하던 와중 '내가 최순실이도 아니고...'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정치 활동을 해도 연예 활동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어서 당선 후에도 계속 연예 활동을 이어갔고 국회의원 신분으로 제3공화국에 출연하기도 했다. 당시 각 당에서 얼굴마담 형식으로 배우들을 뽑았기 때문에 당 차원에서 드라마 출연을 막진 않았으나 공무원 겸직에 관련된 지속적으로 논란이 생겼다. 결국 제14대 국회의원 임기 중 연예활동 겸직 금지 규정이 명문화 되었고 1995년부터 실행되었다. 이로 인해 이순재는 잠시 방송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를 공개 지지했으며,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의 선대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