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호 | 裵湖 | Bae Ho - 혼으로 노래한 보컬리스트
본명
배만금
출생
1942년 4월 24일
대만
중화민국 산둥성 지난시
사망
1971년 11월 7일 (향년 29세)
가족
부친 배국민, 모친 김금순
학위
삼성중학교 (중퇴)
종교
개신교
데뷔
1963년 "굳바이"
활동
1963년 ~ 1971년
독립운동을 위해 대한민국에서 산둥성으로 이주한 광복군 제3지대 출신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러다 광복 이후, 3살이 되어 한국으로 귀국했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운동 감각도 뛰어나 수영과 야구에도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1955년 과음으로 인한 간경화로 사망하고 그 이후 부산에 있는 이모의 집에 내려가 살다가 집안 사정이 더욱 어려워지자 부산 삼성중학교를 중퇴하고 어머니의 권유로 서울에 있는 삼촌 김광빈의 집으로 상경하였다. 참고로 "배호"라는 예명도 이 때 김광빈이 지어주었다. 오로지 드럼을 배우겠다는 열정에 사로 잡혀 외삼촌에게 음악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다고 한다.
1958년부터 1964년까지 삼촌 김광수와 김광빈의 악단, 미군부대, 캬바레, MBC 악단, 김인배 악단 등에서 드럼을 연주하며 음악활동을 시작했으며, 6~7인조 캄보 밴드인 <배호와 그 악단> 을 결성해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이후 김광빈에게서 받은 <굿바이>, <두메산골> 등의 곡을 취입하지만 별다른 히트를 치지 못했고 여전히 가수를 부업으로 하는 드러머 생활을 이어갔다.
그가 부른 초기의 곡들은 트로트가 아닌 재즈나 라틴음악 등이 섞인 스탠더드 팝 계열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1967년 배상태가 작곡한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가 대히트하였고 그는 곧 1960년대 최고의 인기 가수로 자리잡았다. 그 이후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가 울어>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10대 가수로 선정되었다.
그는 1966년부터 앓아온 신장염으로 투병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건강이 회복될 틈도 없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1969년 MBC 10대 가수상 시상식 때는 몸이 아파 출연 여부를 타진하다가 간신히 출연해 노래를 불렀는데, 몸이 안 좋아 걸음도 못 걸었을 정도라고 한다. 당시 발성이 제대로 되지 않는 배호를 본 동료 가수들은 울음을 터트렸다고.
그러다 1971년 라디오 출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맞는데 저체온증으로 감기 몸살에 걸리고, 투병생활로 면역력이 약해 몸살이 악화되면서 끝내는 졸도, 여기에 복막염까지 합병증으로 겹쳐 1971년 11월 7일 눈을 감았다. 당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배상태와 함께 퇴원해 미아리에 있던 자택까지 택시를 타고 가던 도중 사망했다고 한다.
대구 공연에서 만난 여성 팬과 약혼까지 했는데, 그를 계속 간호했다고 한다. 결국 배호가 모진 말을 해서라도 임종 직전에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당대의 사회상을 고려하면 팬의 미래(= 새로운 짝을 찾는 것)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고 할 수있다. 그의 장례식에서는 최희준, 현인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참석하고 소복을 입은 여인들이 길게 늘어섰으며 장례식에서는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낀 장충단공원> 등 고인을 대표하는 히트곡과 함께 유족들과 동료들, 스승들의 서글픈 흐느낌만이 울려퍼젔다.
경기도 양주시 신세계 공원묘지에 안장되었으며 여기에 어머니와 동생의 묘소까지 함께 있다.
1981년 MBC에서 특집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에 선정되었고 2005년엔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은 국민가수 10인'으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요절한 후에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배호와 함께 일한 음악인이 훗날 흡사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를 발굴하고자 했지만, 음악 실력 및 목소리 활용 능력 측면에서 차이가 있어 포기했다는 일화도 있다. 신장염에 + 복막염까지 앓는 중에도 박자, 음성에 흐트러짐 없이 정확한 음정을 선보인 고인의 그것에 비해 손색이 있었기 때문.
배호의 특집 다큐멘터리에서 프랑스에서 재즈바를 운영하는 프랑스인이 소개되었는데, 그가 배호의 곡을 라이브에서 연주하며 배호를 알게 된 외국인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또한 2003년 10월 20일에 대한민국 가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옥관 문화훈장이 추서되었으며 2003년부터 배호 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2005년 5월 20일에는 소담출판사에서 <배호평전>(김선영 지음)이 출간되었다(노트북 - RISS : 배호평전). 그리고 삼각지의 한 거리가 배호 길로 명명되었다.
1963년 굳바이
1965년 안개속에 가버린 사람
1966년 누가 울어
1966년 두메산골
1966년 황금의 눈
1967년 돌아가는 삼각지
1967년 비겁한 맹세
1967년 안개낀 장충단 공원
1968년 능금빛 순정
1968년 파도
1968년 황토 십리 길
1969년 그 이름
1969년 당신
1969년 만나면 괴로워
1970년 막차로 떠난 여자
1970년 비 내리는 명동
1970년 오늘은 고백한다
1970년 비 내리는 경부선
1971년 마지막 잎새 - 유작.
1971년 영시의 이별 - 유작.[금지곡]